EP.01 익어가는 것은 언제나 느림의 편입니다. EP.01
익어가는 것은 언제나 느림의 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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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것들이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머무름은 사라지고, 생각은 속도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머무름이 없는 마음은 마음이 아니라, 그저 정보를 처리하는 장치일지도 모릅니다.
10월 한 달 동안 현대산책자를 통해 총 아홉 번의 산책을 함께하며, ‘느림’과 ‘머무름’의 가치를 다양한 시선에서 다뤘습니다.
굳이 원문을 바로 보지 않더라도, 이 뉴스레터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 각 산책의 기획 의도와 사유의 결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긴 호흡으로 뉴스레터를 쭉 읽다가 마음이 머문 산책이 있다면, 다시 돌아가 ‘산책하기’ 링크를 통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첫 뉴스레터이다 보니 예상보다 긴 호흡이 되었습니다. 다음 호부터는 한결 여유로운 리듬으로, 2주에 한 번의 산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만큼은 ‘느림’의 주제를 다루는 만큼, 조금 더 길게 머물러 보고 싶었습니다. 지적인 산책자 여러분이라면 이 느린 리듬을 함께 즐겨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달의 산책은 ‘벽돌책’에서 시작해 ‘알고리즘의 시대 속 지식인의 책무’와 ‘우리를 머무르게 하는 문장’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전쟁과 혼란, 우정과 예술, 신념과 사유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또 핀천, 라슬로, 슬로터다이크 그리고 카뮈와 사르트르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인간다운 속도를 고민했습니다.
이 모든 여정의 바탕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익어가는 것은 언제나 느린 쪽의 편에 서 있지 않은가.”
산책자 여러분도 이 뉴스레터와 함께 잠시 머물며, 조금 느리게, 천천히 익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대산책자 발행인 이현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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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첫 번째 산책 ]
책은 사유를 깨는 도끼다.
벽돌책은 그렇다면 더 큰 도끼다.
10월의 초입, 추석 연휴가 있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멈춰 설 수 있었던 며칠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고향에 잠시 내려가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묵직한 질문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저는 늘 궁금합니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생명은 왜 진화했는지, 국가는 왜 실패하고, 도덕은 과연 진보할 수 있는지. 두꺼운 책 속에는 앞선 이들의 비슷한 고뇌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 사유의 무게가 우리의 얼어붙은 사고를 쪼개고, 새로운 틈을 냅니다. 이번 달에는 그런 ‘묵직한 도끼 같은 책’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뉴스레터에서만 살짝 공개하자면,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책은 브뤼노 라투르의 『존재양식 탐구』입니다. 라투르는 세계가 단일하지 않고, 결국 다성의 합창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가 하나의 틀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인식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타자를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벽돌책을 가장 사랑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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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두 번째 산책]
우리가 진정 호모 사피엔스인가?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전환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리즘에 시간을 맡기고, 감정을 자극당하며, 선택을 위임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권력을 넘겨주며, 매번 같은 패턴을 반복할까요?
망각과 환상, 그리고 자기파괴적 충동이 호모 사피엔스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라면, 과연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진정 호모 사피엔스가 맞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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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세 번째 산책]
끝내 이어지는 존재의 지속
“그의 작품은 종말론적 공포 한가운데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 스웨덴 한림원, 수상 사유 —
2025 노벨문학상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습니다. 라슬로의 문장은 끝없이 이어지며, 우리를 종말이 아닌 ‘계속됨’의 자리로 데려갑니다.
예술은 더 이상 희망을 약속하지 않지만, 인간은 그것을 결코 놓지 못합니다.
자연과 신성이 침묵한 시대에도, 결국 남는 것은 인간 자신과 역사뿐임을 그는 말합니다.
라슬로가 보여주는 것은 위로가 아닌, 낙담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존재의 지속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 조건의 본질이라고, 그는 집요하게 증언합니다.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우리 역시 라슬로처럼 ‘끝내 이어지는 존재의 지속’을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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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네 번째 산책]
전쟁의 시대,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최근 ‘천재 감독’으로 평가받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가 공개되었습니다.
그 영화의 원작자인 토머스 핀천은, 미국의 쇠락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작가입니다. 핀천은 전쟁을 단순한 충돌이 아닌 ‘자본의 의식’으로 바라봅니다.
그에게 그것은 국가의 명분이나 이념이 아니라, 시장 논리와 금융 신앙이 지배하는 경제적 제의입니다. 『Gravity’s Rainbow』에서 『Bleeding Edge』에 이르기까지, 핀천은 돈이 신이 된 세계를 끈질기게 파헤칩니다.
정치와 신념, 자유와 정의마저 자본의 교리에 종속되고, 산업과 권력은 새로운 신전의 사제처럼 인간의 삶을 장부 위에 기록합니다.
오늘의 사회는 더 이상 외부의 적과 싸우지 않습니다. 총 대신 숫자가, 폭탄 대신 부채가, 전선 대신 일상이 피폐해집니다.
핀천의 문학은 이 ‘내전화된 자본주의’의 풍경 속에서 묻습니다.
"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고, 그 결과는 누구의 장부에 적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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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다섯 번째 산책]
알베르 카뮈, 그 시절의 프랑스
전후 파리의 밤은 언제나 담배 연기와 토론으로 가득했습니다. 좁은 살롱에 모인 이들은 철학과 문학, 정치와 예술을 넘나들며 세계의 운명을 논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알베르 카뮈가 있었습니다. 알제리에서 온 젊은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피카소와 바르트 같은 당대의 거장들과 함께 격렬히 토론했습니다.
때로는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을 경험했습니다. 이번 산책에서는 그와 얽힌 여섯 인물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 사이의 우정의 순간들을 다루었습니다.
카뮈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복잡했습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언제나 인간과 세계를 둘러싼 치열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결국 우정은 단순히 곁에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때로는 부조리를 견디게 하는 은밀한 힘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우정을 가지고 계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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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여섯 번째 산책]
혼란의 시대, 꿀벌의 춤을 배우자
우리가 마주한 전쟁과 불평등, 불안, 그리고 기후 위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때 인문학은 단순한 사유의 유희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생존의 방주가 됩니다.
꿀벌의 춤은 새로운 집을 찾을 때 벌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각자가 다른 방향에서 춤을 추며 의견을 모으고, 결국 모든 꿀벌이 하나의 리듬으로 합의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 다수의 리듬 속에서, 홀로 두려움을 무릅쓰고 ‘다른 춤’을 추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철학자의 춤이자, 인간의 사유입니다.
인문학은 죽은 자의 목소리를 현재로 이어주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인간에게 사유의 가능성을 건넵니다. 이 시대의 사명은 철학자의 춤을 넘어, 각자가 자신의 꿀벌의 춤을 추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고, 인간 고유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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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일곱 번째 산책]
문학전집의 1번은,
한 출판사가 세운 신념의 좌표다
책마다 번호가 있지만, ‘1번’은 단순한 순서가 아닙니다. 출판사가 세상에 가장 먼저 내놓고 싶은, 단 하나의 신념입니다.
어떤 곳은 신화로 시작했고, 어떤 곳은 인간의 내면으로, 또 어떤 곳은 도시의 소음으로 첫 장을 열었습니다.
그 선택에는 각자가 믿는 문학의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출판사의 첫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번 산책에서는 서로 다른 철학으로 세상의 첫 페이지를 연 열 개의 출판사와 그들의 ‘1번’을 만나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신념의 좌표와 공명하는 출판사는 어디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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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여덟 번째 산책]
모두가 발언하는 시대, 지식인의 책무란?
사르트르는 지식인에게 참여와 개입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묻습니다. 과연 오늘날 지식인의 위치는 사르트르의 시대와 같은 맥락에 있을까요? 모두가 발언하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며, 알고리즘이 여론을 선별하는 시대에 지식인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이제 지식인은 거리 위의 투사나 절대적 판단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도와 효율의 논리 속에서 멈추어 생각하고, 인간적인 판단을 지키려는 느린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지식인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그 존재 방식은 달라졌습니다. 속도보다 방향을, 효율보다 판단을 지키려는 이들, 그들이 바로 오늘의 지식인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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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산책]
익어가는 것은 언제나 느린 쪽의 편입니다.
10월의 마지막 산책으로,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는 문장들을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머무름이 없습니다. 아니, 머무르지 못합니다. 어쩌면 알바 알토의 말처럼, 가장 큰 오류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환경은 우리를 머무르지 못하게 합니다. 속도를 멈출 수 없고, 끊임없이 욕망하고 욕구하게 만듭니다. 머무름은 곧 뒤처짐이 되고, 기다림은 낭비가 되어버린 시대입니다. 그러나 사유는 멈춤 속에서 자라납니다.
"익어가는 것은 언제나 느린 쪽의 편에 서 있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를 잠시 멈춰 세워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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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마무리하며
이제 10월의 산책을 마무리합니다. 긴 여정이었지만, 그 느린 걸음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서로의 사유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현대산책자는 언제나 ‘지성인들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다음 산책에서도 한 권의 책, 한 줄의 문장, 한 사람의 사유가 일상 속에 작은 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11월에는 현대산책자의 새로운 시도, 『프로메테우스 저널』이 공개됩니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동시대를 바라보며, 기술·예술·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금,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려 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를 밝히는 불씨가 다시 사유의 언어로 타오르길 바랍니다.
그때까지 부디 마음의 속도를 조금 늦추시길. 익어가는 것은 언제나 느린 쪽의 편에 서 있으니까요.
산책자 여러분, 이번 달에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행인 이현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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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 큐레이션 플랫폼
현대지성인을 위한 지식 큐레이션 플랫폼입니다. 현대산책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콘텐츠를 발견하고, 깊이 있는 고민 끝에 큐레이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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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책자는 철학·문학·예술을 주제로 한 세션과 포럼을 기획합니다. 국내 주요 출판사, 문화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지식을 나누고 이를 지혜로 확장하는 자리를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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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도시, 다양한 시선
현대산책자가 구축한 협업 프로세스를 통해, 각 분야의 창작자와 사유자들은 서울을 거점으로 뉴욕, 텍사스, 보스턴, 런던 등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며, 그들이 포착한 동시대의 새로운 시각과 사유를 함께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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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사라지는 정보의 시대, 현대산책자는 조금 느리게, 그러나 더 깊게 걷고자 합니다.
이 뉴스레터는 철학·예술·문학·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합니다.
디렉터와 에디터들의 오피니언, 한 달을 되돌아보는 주요 콘텐츠, 그리고 뉴스레터 구독자만을 위한 단독 콘텐츠까지 담아봅니다.
지식이 아닌 지혜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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